중동 지역의 전쟁 발발은 인플레이션 상승 전망을 자극하고 에너지 공급망을 교란시켰으며, 군사 지출 증대와 지정학적 불확실성을 심화시켰습니다. 본래 이러한 상황은 안전 자산인 귀금속에 강력한 상승 동력으로 작용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금, 은, 플래티넘, 팔라듐 가격은 분쟁이 시작된 2월 28일 이후 급락했으며, 이는 1월 마지막 주부터 시작된 하락세에 무게를 더했습니다(그림 1).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이러한 하락세를 부추기고 있으며, 향후 전망은 어떠할까요?
그림 1: 중동 분쟁 발발 이후 귀금속 가격의 급격한 하락
2025년 초부터 2026년 1월 말까지 귀금속 가격을 끌어올린 여러 요인은 하나의 핵심적인 펀더멘털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바로 '인플레이션에 대한 공포'입니다. 인플레이션 우려를 자극했던 구체적인 요인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목표치를 상회하는 근원 인플레이션: 전쟁 발발 전부터 대부분의 주요 경제국에서 변동성이 큰 식품 및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인플레이션이 중앙은행 목표치를 웃돌고 있었습니다 (그림 2).
그림 2: 분쟁 시작 전부터 목표치를 상회한 근원 인플레이션
- 완화적인 통화 정책: 근원 인플레이션이 전반적으로 목표치를 상회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금리 인하를 단행하고 있었습니다(그림 3).
그림 3: 중앙은행들, 목표치를 상회하는 근원 물가상승률에도 불구하고 금리 인하
- 막대한 재정 적자: 많은 국가가 GDP 대비 이례적으로 높은 재정 적자를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브라질(8.5%), 중국(8.5%), 프랑스(5.5%), 멕시코(4.0%), 영국(4.5%), 미국(5.5%) 등이 대표적입니다. 독일과 일본 또한 인프라 투자와 군사 지출을 대폭 늘릴 준비를 하면서 재정 적자 규모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되었습니다.
- 중앙은행 독립성에 대한 우려: 목표치를 상회하는 인플레이션, 완화적인 통화 정책, 그리고 막대한 재정 적자가 맞물리면서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우려가 커졌습니다. 정부의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해 중앙은행이 '저금리 및 유동성 공급(Easy money)' 정책을 강요받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확산된 것입니다.
- 지정학적 불확실성: 무역 장벽의 강화, 공급망의 온쇼어링(자국내 복귀) 및 니어쇼어링(인접국 이전) 현상과 더불어 중동 및 태평양 지역의 잠재적 충돌 가능성, 그리고 지속되는 러-우 전쟁 등이 결합되었습니다. 이러한 불확실성은 자산 포트폴리오를 귀금속으로 다각화하려는 수요를 자극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흐름은 1월 중순, 오는 5월 차기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으로 케빈 워시(Kevin Warsh)가 지명되면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시장은 그를 통화 정책에 있어 독립적인 입장을 견지할 인물로 보았습니다. 특히 그는 중앙은행이 국채 등을 매입해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양적 완화(QE) 정책에 대해 오랫동안 반대해 왔거나, 적어도 회의적인 시각을 가진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연준의 독립성 훼손에 대한 우려가 사라지자 귀금속 가격은 급락했습니다. 하지만 2월 말, 중동 분쟁이 본격화되기 직전까지만 해도 귀금속 가격은 다시 반등하는 추세였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이번 중동 분쟁은 금, 특히 팔라듐, 플래티넘, 은 가격에 악재로 작용했습니다. 오히려 소비자 측면에서 보았을 때 휘발유(가솔린)와 경유(디젤 연료) 가격이 폭등했습니다. 미국 자동차 협회(AAA) 데이터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현재 2월보다 가솔린은 갤런당 약 1달러, 디젤(및 난방유)은 1.50달러를 더 지불하고 있습니다. 가솔린 등 연료가 소비자물가지수(CPI)의 약 3%를 차지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재의 에너지 가격이 유지될 경우 향후 두 달 동안 미국의 헤드라인 인플레이션 수치는 최대 1%까지 치솟을 수 있습니다(그림 4).
이러한 가격 상승은 세계 다른 지역에서 더욱 두드러질 수 있습니다. 현재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보다 15달러 높게 거래되고 있으며, 오만(Oman) 원유는 WTI보다 무려 60달러 이상 높은 수준입니다. 이는 유럽과 아시아 지역이 미국보다 훨씬 더 큰 '에너지발 인플레이션 충격'에 직면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그림 4: 가솔린 및 디젤 가격의 가파른 상승세
소문에 사고 뉴스에 팔아라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더 높은 인플레이션이 현실화(Crystallizing)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귀금속 시장에 그리 좋은 소식이 아닙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중앙은행들이 정책 방향을 틀어 금리 인상을 검토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영국 중앙은행(BoE)은 금리를 최대 세 차례나 올릴 수 있음을 시사했고, 유럽 중앙은행(ECB) 역시 금리 인상 가능성을 경고했습니다. 미 연준(Fed)은 3월 회의 이후 2026년에 한차례의 25bp(0.25%p)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두긴 했지만, 연방기금 선물 시장에서는 이미 2026년과 2027년의 추가 금리 인하 기대감이 대부분 사라진 상태입니다(그림 5).
금리 인하 횟수가 줄어들거나 오히려 금리가 오를 것이라는 전망은, 투자자들이 대규모 금리 인하를 기대했을 때보다 법정 화폐(현금) 보유의 매력을 귀금속 대비 상대적으로 더 높게 만듭니다.
그림 5: 연준 금리 인하 기대감의 소멸
어떤 면에서 2025~2026년의 귀금속 시장 흐름은 2019~2023년 당시를 떠올리게 합니다. 2019년 초부터 2020년 중반까지, 시장이 연준의 금리 인하를 예상하고 팬데믹 초기 중앙은행이 금리를 제로(0) 수준으로 낮추면서 금값은 치솟았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인플레이션이 본격화된 2021년부터 2023년까지, 중앙은행들이 1970년대 후반 이후 가장 강력한 긴축 정책을 펼치자 금값은 2,100달러에서 1,600달러 선까지 밀려났습니다(그림 6). 이는 '소문에 사고 뉴스에 팔아라'의 전형적인 사례였습니다. 금과 은은 2019년과 2020년에 다가올 인플레이션을 정확히 예측하며 선반영했지만, 막상 인플레이션이 현실화되자 이는 악재로 작용했습니다. 귀금속은 통상 금리 인상 기대감에 부정적으로 반응(역상관관계)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입니다(그림 7).
그림 6: 2019~2020년 금값 랠리, 연준의 금리 인상 우려 전까지 지속
그림 7: 귀금속 가격과 금리 인상 기대감의 역상관관계
달러의 역할
미 달러화(USD)는 2024년 말부터 2026년 초까지 대체로 하락세를 보였습니다. 블룸버그 달러 지수와 역상관관계를 갖는 금과 기타 귀금속 가격은 이러한 달러 약세에 힘입어 강세를 나타냈습니다(그림 8).
하지만 중동 분쟁이 발발하면서 상황이 급변했습니다. 미 달러화가 안전 자산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하며 대부분의 통화 대비 강세를 보인 것입니다. 이러한 달러의 랠리는 역설적으로 귀금속 가격에는 하락 압박으로 작용했습니다(그림 9). 이는 시장 전반의 리스크 회피 현상과 맞물려 있으며, 현재까지 주식, 암호화폐 및 기타 위험 자산들의 소폭 하락을 이끌고 있습니다.
그림 8: 귀금속 가격과 미 달러화의 역상관관계
그림 9: 분쟁 발발 이후 주요 통화 대비 반등한 미 달러화
전망
귀금속 가격 상승을 이끌었던 많은 근본적 요인들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주요 경제국 중 어느 곳도 예산 적자를 줄이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분쟁으로 인해 각국은 군사 지출을 더욱 늘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제로 전쟁 전에도 미국 행정부는 국방비를 연간 5,000억 달러(50%) 영구 증액할 것을 요청한 바 있습니다.
중앙은행의 경우, 호주 중앙은행처럼 긴축으로 선회하는 곳도 있겠지만 그 강도는 2022~2023년보다는 훨씬 완만할 것입니다. 일본 중앙은행 같은 곳은 유가 상승에 따른 성장 둔화 우려로 금리 인상을 연기하기까지 했습니다. 금리는 정점을 찍고 완화 기대감이 형성되면서 귀금속은 2020-2023년의 박스권을 탈피하기 시작했습니다. 미래의 어느 시점에 투자자들이 다시 중앙은행의 완화 정책을 가격에 반영하기 시작한다면, 특히 근원 인플레이션이 목표치를 상회하는 상황에서 이는 귀금속의 또 다른 랠리를 촉발하는 불씨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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