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 및 귀금속 시장에 있어 2025년은 극명한 대조를 이룬 한 해였습니다. 외환 시장은 CME 변동성 지수(CVOL)로 측정된 옵션 내재 변동성이 꾸준히 하락하며 마치 빙하가 흐르듯 매우 정적인 움직임을 보였습니다(그림 1). 반면 귀금속 시장은 사뭇 달랐습니다. 금, 은, 백금 옵션 가격은 귀금속 CVOL 지표에 나타난 것처럼 매우 가파른 상승세를 기록했습니다(그림 2).
그림 1: 2025년 외환(FX) CVOL의 지속적인 하락세
그림 2: 2025년 귀금속 내재 변동성의 가파른 상승세
금속 가격 상승과 외환 시장 횡보를 견인하는 4대 거시경제 요인
외환 현물 환율이 상대적으로 정체되면서 통화 시장의 내재 변동성은 하락세를 보였습니다. 2025년 한 해 동안 블룸버그 달러 인덱스(Bloomberg U.S. Dollar Index)가 하락하긴 했으나, 과거 사례와 비교하면 그 변동폭은 매우 미미한 수준이었습니다(그림 3). 반면, 귀금속 시장은 뜨거웠습니다. 금과 은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고공행진을 이어갔고, 백금과 팔라듐 가격 또한 2025년 4월에서 10월 사이 90% 가까이 폭등했습니다(그림 4). 그렇다면 환율이 제자리걸음을 하는 와중에도 귀금속 가격을 이토록 강력하게 끌어올린 거시경제적 핵심 동력은 무엇일까요? 또한, 각국 중앙은행이 2026년에 다시 금리를 올리며 정책 기조를 선회한다면, 귀금속 가격과 환율은 어떤 국면을 맞이하게 될까요?
그림 3: 과거 사례 대비 변동폭이 크지 않았던 2025년 미 달러화
그림 4: 달러 및 모든 법정통화 대비 급등한 귀금속 가격
2025년 외환 시장이 이토록 평온했던 이유 중 하나는 여러 법정통화 간의 뚜렷한 차별점을 찾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각국이 처한 거시경제 환경과 통화 및 재정 정책 여건이 매우 유사한 상황이기 때문인데요. 요약하자면, 현재 대부분의 국가에서 다음과 같은 공통적인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 근원 인플레이션이 목표치를 여전히 상회하고 있습니다.
- 거의 모든 중앙은행이 목표치를 초과한 인플레이션에도 불구하고 금리 인하를 단행 중입니다.
- 대부분의 국가에서 실업률 상승과 경제 성장 둔화 현상이 관측되고 있습니다.
- 재정 정책 우위(Fiscal Dominance): 다수의 국가가 대규모 재정 적자를 기록 중이며, 이를 억제할 구체적인 계획이 부재한 상황입니다.
이런 배경 탓에 법정통화 간의 변별력은 사라졌지만, 대신 투자자들은 중앙은행이 마음대로 찍어낼 수 없는 자산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인플레이션: 거의 모든 국가에서 목표치 상회
현재 전쟁 중이거나 초인플레이션을 겪는 국가를 제외하고, 변동환율제를 채택한 21개 주요 경제국을 살펴보면 인플레이션이 중앙은행 목표치를 평균 1%가량 상회하고 있습니다. 중국과 스위스 같은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사실상 거의 모든 국가의 물가가 목표치를 웃도는 상황입니다.
인플레이션은 단순히 목표치를 상회하는 데 그치지 않고, 대부분의 국가에서 상승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조사 대상인 21개 통화권의 지난 6개월간 전년 대비 근원 인플레이션은 평균 0.2% 올랐습니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12개 통화권에서 근원 인플레이션이 상승한 반면, 하락한 곳은 4개에 불과했으며 5개 통화권은 보합세를 유지했습니다(그림 5 및 부록 참조).
그림 5: 전 세계적으로 목표치를 상회하며 상승세를 보이는 근원 인플레이션
| 국가별 중앙은행 목표치 및 근원 CPI 현황 | ||||
|---|---|---|---|---|
| 인플레이션 목표치 (또는 목표 범위 중간값) | 현재 근원 인플레이션 | 목표 대비상회/하회 폭 (%) | 6개월 변동치 | |
| 호주 | 2% | 3.6% | 1.6% | 0.7% |
| 브라질 | 3% | 4.8% | 1.8% | -0.1% |
| 캐나다 | 2% | 3.1% | 1.1% | 0.0% |
| 칠레 | 3% | 3.8% | 0.8% | 0.2% |
| 중국 | 3% | 1.0% | -2.0% | 0.5% |
| 콜롬비아 | 3% | 5.3% | 2.3% | 0.1% |
| 체코 | 2% | 2.9% | 0.9% | 0.0% |
| 유로존 | 2% | 2.4% | 0.4% | 0.1% |
| 헝가리 | 3% | 4.2% | 1.2% | -0.8% |
| 인도 | 4% | 4.5% | 0.5% | 0.3% |
| 일본 | 2% | 3.0% | 1.0% | 0.0% |
| 멕시코 | 3% | 4.3% | 1.3% | 0.7% |
| 뉴질랜드 | 2% | 3.0% | 1.0% | 0.5% |
| 노르웨이 | 2% | 3.4% | 1.4% | 0.4% |
| 폴란드 | 2.50% | 3.2% | 0.7% | -0.2% |
| 루마니아 | 2.50% | 8.0% | 5.5% | 0.0% |
| 한국 | 2% | 2.5% | 0.5% | 0.1% |
| 스웨덴 | 2% | 2.6% | 0.6% | 0.3% |
| 스위스* | 2% | 0.5% | -1.4% | 0.0% |
| 영국 | 2% | 3.4% | 1.4% | -0.1% |
| 미국 | 2% | 3.0% | 1.0% | 0.2% |
| 평균 | 1.0% | 0.2% | ||
출처: Bloomberg Professional(근원 인플레이션율)
인플레이션이 전 세계적으로 목표치를 상회하고 있지만, 그 구체적인 원인은 국가마다 다릅니다. 미국, 영국, 유로존의 경우 서비스 물가가 인플레이션을 주도하는 반면, 남미 국가 등지에서는 상품 가격 상승이 주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 자리한 근본적인 배경은 세계 전역에서 단행된 대규모 통화·재정 부양책에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국가가 팬데믹 구호 조치에 GDP의 10~20%에 달하는 막대한 자금을 투입했습니다. 또한, 각국 중앙은행은 2020년 금리를 파격적으로 낮춘 뒤 2022년에 이르러서야 정책 기조를 선회했으며, 2023년까지 급격한 긴축 행보를 이어갔습니다. 유일한 예외는 중국입니다. 중국은 GDP의 3%만을 경기 부양에 사용해 팬데믹 이후의 물가 급등을 겪지 않았으며, 인민은행은 2017년 이후 긴축 정책을 시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울러 보호무역주의의 확산, 공급망의 니어쇼어링 및 온쇼어링(해외 공장의 근거리 및 국내 이전), 군비 증강, 인구 구조적 요인 등도 인플레이션 압력을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꼽힙니다.
정작 흥미로운 사실은, 거의 모든 곳에서 인플레이션이 목표치를 상회하고 있음에도 각국 중앙은행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통화 완화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인플레이션 목표치 상회에도 불구, 금리 인하 기조를 이어가는 중앙은행들
2025년 금리 인상을 단행한 중앙은행은 일본은행(BoJ)과 브라질 중앙은행 두 곳뿐입니다. 그 외 다른 모든 중앙은행은 금리 인하 기조를 택했습니다(그림 6, 7, 8, 9).
그림 6: 일본은행(BoJ)을 제외한 세계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일제히 금리 인하
그림 7: 브라질을 제외한 중남미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통화 완화 기조
그림 8: 동유럽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통화 완화 기조 합류
그림 9: 인플레이션 상승세에도 불구하고 금리 인하를 단행한 인도 중앙은행(RBI)
경제학자와 투자자들이 앞으로 직면하게 될 핵심 질문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전 세계적인 통화 완화 정책이 실질적인 경제 성장 가속화로 이어질 것인가?
- 경제 성장이 본격화될 경우, 근원 인플레이션은 추가 상승 압력을 받게 될 것인가?
- 결국 각국 중앙은행은 2026년에 다시 정책 기조를 선회하여 긴축에 나서게 될 것인가?
- 만약 정책 기조가 선회된다면, 이러한 긴축 행보가 외환 및 귀금속 시장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가?
인플레이션이 여전히 목표치를 상회하는 상황에서의 통화 완화는 자칫 2차 인플레이션 파동을 촉발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됩니다. 현재 귀금속 시장은 바로 이러한 시나리오를 가격에 선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귀금속 투자자들이 인플레이션 위험을 과도하게 평가하고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중앙은행의 완화 행보는 2023년과 2024년에 나타난 물가 하락세에 따른 대응일 뿐이며, 실질 금리는 여전히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그림 10).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중앙은행은 여전히 경제의 브레이크를 밟고 있는 셈입니다. 단지 그 강도가 1~2년 전보다 조금 약해졌을 뿐입니다.
그림 10: 명목 금리에 비해 하락 폭이 미미한 실질 금리
시장의 기대치를 살펴보면, 단기 금리 선물 시장은 미국의 추가 완화 가능성을 가격에 반영하고 있습니다. SOFR 및 연방기금(Fed Fund) 선물 트레이더들은 내년 말 연방기금 금리가 약 3% 수준에 형성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영국의 단기 금리(STIRS) 투자자들 역시 영란은행(BoE)의 추가 완화 가능성을 점치고 있습니다. 또한, 트레이더들은 캐나다와 유로존이 2026년 초 소폭의 추가 완화를 단행한 후, 2026년 말이나 2027년부터는 정책 기조를 선회하여 긴축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반면, 호주와 일본의 경우 금리 인상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특히 일본은 정책 금리가 근원 인플레이션율을 크게 밑돌고 있어 이례적인 사례로 꼽힙니다(그림 11).
그림 11: 연준의 추가 금리 인하 및 호주·일본의 금리 인상 가능성을 반영 중인 시장
각국 중앙은행의 행보가 엇갈리며 일부는 긴축을, 일부는 완화를 지속하게 된다면 환율 변동성이 커지며 강력한 추세가 형성될 수 있습니다. 통상 긴축 정책을 펴는 통화는 완화 기조를 유지하는 통화 대비 강세를 보입니다. 물론 금리는 환율을 결정하는 여러 매크로 변수 중 하나일 뿐입니다. 재정 및 경상 수지 적자 규모의 변화, 상대적 경제 성장률 등도 함께 작용합니다. 투자자들은 일반적으로 쌍둥이 적자(재정·경상 수지)가 축소되거나 흑자가 확대되는 국가, 그리고 성장세가 가속화되는 국가의 통화를 선호합니다.
귀금속 시장 입장에서 '미국 금리는 낮아지고 여타 지역 금리는 정체 또는 인상되는 시나리오'는 나쁘지 않습니다. 귀금속은 달러로 가격이 책정되기에 다른 통화보다 달러 향방에 훨씬 민감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연준이 2026년 시장의 예상을 깨고 금리를 '깜짝 인상'한다면, 금리 인상 전망에 취약한 귀금속 시장에는 큰 충격이 될 것입니다.
저성장과 실업률 상승: 완화 정책의 배경
물가가 목표치를 웃도는 상황에서도 왜 중앙은행들이 완화 정책을 강행하는지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 답은 저성장, 특히 고용 시장의 위축에 있습니다. 많은 국가에서 채용이 중단되고 실업률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스위스, 미국은 물론 동유럽에서도 실업률 상승세가 포착됩니다. 반면 유로존, 일본, 한국 등은 안정적이며, 브라질은 오히려 실업률이 하락했습니다. 이는 브라질 중앙은행이 글로벌 추세를 거스르고 금리를 인상한 근거가 됩니다(그림 12-14). 다행히 과거 불황기와 같은 대규모 해고 사태는 없지만, 중앙은행들은 인플레이션 파이팅보다 경기 부양에 더 무게를 두는 모습입니다.
그림 12: 주요 선진국들의 실업률 상승 추세
그림 13: 동유럽 지역의 점진적인 실업률 상승
그림 14: 안정적인 중남미 실업률 및 브라질의 하락세
미국 노동 시장은 중앙은행의 딜레마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고용 증가세는 둔화됐지만, 임금은 여전히 빠르게 오르고 있습니다. 노동 인구에게 지급되는 총 보상액은 연간 약 5%씩 늘어나고 있는데, 이는 2010년대 평균(4~5%)을 상회하는 수준입니다(그림 15).
그림 15: 고용은 둔화되었으나 견조한 임금 상승세를 보이는 미국
재정 정책 우위: 고착화된 대규모 재정 적자
미국은 실업률이 4.4%로 낮고 관세 수입이 GDP의 1.1%까지 늘었음에도, GDP 대비 6%라는 이례적인 재정 적자를 기록 중입니다. 영국(4.5%), 프랑스(5.5%)도 마찬가지이며, 독일 역시 국방 및 인프라 지출 확대로 2026년 적자폭이 커질 전망입니다. 일본 또한 막대한 국가 부채에도 불구하고 신임 총리가 재정 부양책 확대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중국과 브라질 역시 GDP 대비 8.5%의 적자를 기록 중이며, 멕시코는 사상 최저 실업률 속에서도 역사적 기준을 상회하는 4%의 적자를 내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들 국가 중 적자 감축에 단호한 의지를 보이는 곳이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통화 정책이 재정 정책을 견제하던 시대에서, 재정이 주도권을 쥐는 '재정 정책 우위(Fiscal Dominance)' 시대로의 전환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체제에서 중앙은행은 물가 안정과 경기 부양 사이에서 더 가혹한 선택을 강요받게 됩니다.
결론 (Bottom Line)
많은 국가가 유사한 처지에 놓이면서 법정 통화 간의 변별력은 사라졌고 환율 변동성도 낮아졌습니다. 하지만 2026년 각국의 정책과 성장률이 갈라지기 시작하면 상황은 급변할 수 있습니다.
2025년 한 해 동안 많은 투자자들은 법정 통화 가치가 귀금속 대비 하락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재정 적자가 확대되고 중앙은행이 고물가 속에서도 완화 기조를 이어간다면 이 추세는 2026년에도 계속될 것입니다.
다만, 귀금속 롱 포지션 투자자들에게는 한 가지 큰 리스크가 있습니다. 바로 다른 중앙은행들이 브라질처럼 정책 기조를 선회하여 금리 인상에 나서는 경우입니다. 브라질은 이번 10년대 내내 다른 국가들에 앞서 움직이는 '선행 지표' 역할을 해왔습니다. 만약 다른 국가들이 다시 한번 브라질의 선례를 따른다면, 2022~2023년 금리 인상기처럼 귀금속 가격 상승세는 멈추고 조정 국면에 진입할 수 있습니다.
부록
그림 16: 중국을 제외한 전 세계 모든 지역에서 목표치를 상회하는 인플레이션
그림 17: 중남미 전역의 목표치 초과 물가 속에서 홀로 금리 인상을 단행한 브라질
그림 18: 동유럽 주요 경제국의 근원 인플레이션 목표치 상회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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