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늘 그래왔듯, 현재 미국의 재정 정책과 통화 정책은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미국 연방 정부는 GDP의 약 5.7%에 달하는 대규모 재정 적자를 기록하며 확장적 재정 정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는 역사적으로 낮은 실업률(4.2%)을 기록 중인 경제 상황에서는 이례적으로 높은 수준입니다(자료 1).
자료 1: 낮은 실업률에도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재정 적자
반면 연준의 통화 정책은 중립이거나 약간 긴축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목표 기준금리가 근원 물가 상승률보다 살짝 높게 형성되어 있으니까요(자료2). 게다가 미 연방기금 선물 시장도 향후 1~2년 내 금리 인하보다는 오히려 인상 가능성을 높게 바라보는 분위기입니다(자료3).
자료 2: 근원 PCE 물가에 근접한 미 기준금리
자료 3: 금리 인하보다 인상 가능성을 높게 반영하는 연방기금 선물 시장
미 재무부의 부채 관리 능력
만약 미 연준(Fed)이 금리를 내리는 데 신중한 모습을 보인다면, 미 재무부가 국채 관리 방식을 바꾸어 시장 분위기를 부드럽게 완화할 수 있을까요? 재정 적자 때문에 대규모 국채 발행은 피할 수 없지만, 어떤 만기의 국채를 발행할지는 재무부가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만기가 짧은 단기 국채(T-bills), 중기 국채(Notes), 장기 국채(Bonds) 중 어디에 집중할지 선택할 수 있으니까요.
만약 재무부가 만기가 짧은 단기 국채 위주로 돈을 빌린다면, 연준이 금리를 내리지 않더라도 시장에는 자연스럽게 돈이 풀어지는 효과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주로 4가지 금융 경로를 통해 일어납니다.
1. 양적완화 축소(QT)의 긴축 효과 상쇄
장기 국채 발행을 줄이면 시장에 만기가 긴 채권의 공급이 줄어듭니다. 매물이 줄어들면 채권 가격이 오르면서 장기 금리가 내려가게 되죠. 장기 금리가 낮아지면 안전한 장기채를 갖고 있을 때 얻는 매력이 떨어지므로, 투자자들의 자금이 주식이나 회사채 같은 위험 자산으로 옮겨가게 됩니다. 이렇게 자금이 위험 자산으로 이동하는 효과는 연준이 자산을 줄이며 돈을 죄는 긴축(QT) 효과를 직접적으로 상쇄시킵니다.
2. 단기 금리의 안정적 유지
단기 국채 공급이 늘어나면 단기 채권 금리에 살짝 상승 압력이 가해집니다. 현재 연준 시스템 아래에서는 단기 금리가 연준이 정해둔 행정 금리(지급준비금 금리 IORB, 역레포 금리 ON RRP) 덕분에 일정 범위 내에 안전하게 고정되어 있죠. 단기 국채 금리가 역레포(ON RRP) 금리보다 조금이라도 높아지면, 머니마켓펀드(MMF)는 연준에 맡겨두었던 돈을 빼내 단기 국채를 사들이게 됩니다. 덕분에 연준이 직접 나서지 않아도 단기 금리가 허용 범위를 벗어나 급등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3. 연준에 잠들어 있던 유동성의 시중 공급
머니마켓펀드(MMF)는 연준의 역레포(ON RRP) 창구에 대규모 자금을 묶어두고 있었는데, 이는 사실상 시중에 돌지 않고 잠겨 있던 휴면 자금입니다. 재무부가 단기 국채를 많이 찍어내면 MMF에 매력적인 투자처가 생기면서 연준 대차대조표에 잠겨 있던 돈이 민간 금융 시장으로 다시 흘러나오게 되죠. 이러한 자금 이동은 은행과 레포(Repo) 시장 전반에 쓸 수 있는 유동성을 크게 늘려줍니다.
4. '현금 같은' 담보의 유통 속도 향상
단기 국채는 만기가 짧아 금리 변동에 따른 가격 위험이 거의 없습니다. 금리가 움직여도 채권 가격이 별로 변하지 않다 보니, 레포 시장에서 담보로 잡힐 때 깎이는 비율(헤어컷)이 사실상 0%에 가깝지요. 보통 만기 90일 미만은 0%, 조금 길어도 1%를 넘기는 경우가 드뭅니다. 따라서 단기 국채는 현금과 거의 다름없는 높은 유동성을 가지고 금융 거래에서 담보로 매우 빠르게 유통됩니다. 반면 30년 만기 장기채는 금리가 1%p만 올라가도 채권 가격이 10~15%씩 폭락하므로, 3~6% 수준의 높은 헤어컷을 적용받습니다. 따라서 발행 중심을 장기채에서 단기채로 옮기면, 담보 차감 마찰이 줄어들어 시장 전체의 유동성 순환 속도가 훨씬 빨라지지요.
이처럼 미 재무부가 국채 만기를 단기화하는 것은 사실상 '우회적인 통화 완화' 수단이 될 수 있으며, 물가 상승 기대감을 자극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미 재무부는 실제로 이 전략을 쓰고 있을까요? 이에 대한 답은 단정 짓기 어렵습니다.
최근 국채 발행 데이터 평가
미 재무부가 이 전략을 적극적으로 쓰고 있는지는 어떤 지표를 보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집니다.
시장에 유통되는 전체 미국채의 평균 만기를 보면 소폭 짧아진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평균 만기는 2025년 2분기 72.00개월에서 2026년 2분기 70.67개월로 살짝 낮아졌죠. 하지만 최근 3년의 긴 흐름으로 보면 평균 만기는 2023년에 기록한 역대 최고치(74개월)에서 약간 내려왔을 뿐, 여전히 역사적으로 매우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자료4).
자료 4: 완만하게 줄어든 미 유통 국채의 평균 만기
반면 지난 1년간 신규로 발행된 국채의 구성을 보면 훨씬 명확한 변화가 나타납니다. 단기 국채(T-bills) 발행이 매우 빠르게 늘어났기 때문이지요. 2025년 6월까지의 1년간 단기 국채 순발행량은 186억 달러(GDP의 0.1% 미만)에 불과했지만, 2026년 6월까지의 1년간은 9,060억 달러(GDP의 2.9%)로 폭증했습니다. 과거 연준이 장기채를 사들이기 위해 단기채를 팔았던 특수한 양적완화(QE) 시절을 제외하면, 이는 역대 가장 빠른 단기채 순발행 증가세 중 하나입니다.
동시에 연준의 양적긴축(QT)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면서 장기채 공급은 소폭 줄어들었습니다. 중기 국채(2년~10년) 순발행량은 지난 1년간 1조 300억 달러에서 9,880억 달러로 감소했지요. 장기 국채(최대 30년) 발행량 역시 같은 기간 4,570억 달러에서 4,170억 달러로 줄어들었습니다(자료5).
자료 5: QT 종료와 장기채 공급 감소 속에 폭증한 단기 국채(T-Bill) 발행
결론
전체 국채의 평균 만기는 조금밖에 줄지 않았지만, 장기채 대비 단기채 순발행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은 현재 재무부의 부채 관리가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국채 발행 구조가 사실상의 금리 인하(통화 완화) 효과를 내고 있는지 궁금한 투자자라면, 미 재무부의 분기 국채 발행 계획(QRA)과 평균 만기 변화, 그리고 월간 국채 구성 통계를 지속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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