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새해는 인플레이션을 바라보는 시장의 두 가지 상반된 내러티브와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귀금속 시장의 경우, 인플레이션 상승 압력과 중앙은행의 독립성 우려, 그리고 법정화폐 가치 하락에 대비하려는 투자 수요가 몰리면서 2025년부터 올해 1월 말까지 가격이 폭등했습니다. 반면, 미국 국채 금리는 시장이 인플레이션 가속화 전망을 전면 부정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2025년 전반에 걸쳐 하락세를 띠었고, 2026년 2월까지도 연일 하향 곡선을 그렸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장의 디커플링은 올해 1월 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고착화된 인플레이션'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하나로 수렴되면서, 귀금속 가격은 급락세로 돌아선 반면 미국 국채 금리는 특히 단기물 구간을 중심으로 가파르게 상승하기 시작한 것입니다(자료 1, 2 참조).
[자료 1] 1월 말까지 급등 후 조정을 보인 귀금속 가격
[자료 2] 채권 금리, 2월 말까지 하락 후 상승 전환
이 두 시장의 투자 심리는 왜 수렴하게 되었을까요? 그리고 앞으로의 방향은 어디일까요?
케빈 워시 연준 의장 취임과 중앙은행 독립성을 둘러싼 공방
귀금속 가격 상승은 크게 세 가지 시장 내러티브를 기반으로 움직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 중앙은행의 독립성 훼손 가능성
- 중앙은행들이 2024년과 2025년에 목표치를 상회하는 인플레이션에도 불구하고 금리를 인하했다는 점
-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의 확장적 재정 정책과 막대한 재정 적자
올해 1월 말, 케빈 워시가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으로 지명되면서 연준의 독립성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었습니다. 워시는 2011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위원직을 사임한 후, 양적 완화와 제로 금리 장기화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여온 인물입니다. 소위 '돈 찍어내기'를 남발하며 완화적 정책을 고수할 인물과는 거리가 멀었던 셈입니다. 실제로 6월 중순 취임 후 처음 주재한 FOMC 회의에서, 워시의 연준은 공식적으로 '완화적 기조'를 폐기했습니다.
최근 5개월간 귀금속 가격은 가파른 조정을 받았으나, 여전히 2025년 초 수준을 웃돌고 있습니다. 인플레이션 공포가 피크아웃을 지나긴 했으나 기저의 우려는 여전함을 보여주는 방증입니다. 실제로 최근 몇 달 사이 연방기금 선물과 SOFR 선물 시장의 기류는 180도 뒤바뀌었습니다. 투자자들이 향후 2년간 '50bp 금리 인하'를 선반영하던 것에서 이제는 '50bp 금리 인상'을 점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보통 금 가격은 금리 전망과 반대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금리 인하 기대감이 팽배했던 2019년~2020년 중반, 그리고 2023년~2026년 초에는 금값이 크게 랠리를 펼쳤던 반면, 고금리 장기화 심리가 시장을 지배할 때는 박스권 횡보에 그쳤던 것이 이를 증명합니다(자료 3).
[자료 3] 연준의 정책금리 전망과 역의 상관관계를 보이는 금 가격
글로벌 통화정책의 변곡점: 금리 인하 시대의 종언인가?
역설적이게도 근원 인플레이션의 가파른 상승세는 오히려 귀금속 가격을 끌어내리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흔히 귀금속은 전통적인 인플레이션 헤지(위험회피) 자산으로 꼽히지만, 인플레이션 가속화는 중앙은행의 긴축을 자극해 단기 금리 인상 전망을 끌어올리는 부작용을 낳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물가 상승이 자산 시장에는 도리어 악재로 돌변한 셈입니다.
실제로 미국의 금리 인상 전망이 가파르게 고개를 든 것은 근원 인플레이션의 압력이 다시 거세진 시점과 완벽히 궤를 같이합니다. 최근 몇 달 새 미국의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상승률은 전년 동기 대비 2.8%에서 3.3%로 크게 치솟았습니다.
연준이 완화적 기조를 거두고 연방기금 선물 시장이 금리 인상 가능성을 반영하는 가운데, 다른 중앙은행들은 이미 정책을 긴축으로 전환했습니다(자료 4). 2026년 현재까지 일본은행(BOJ), 유럽중앙은행(ECB), 호주중앙은행(RBA), 노르웨이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상했습니다(자료 5). 또한 많은 국가의 선도 수익률 곡선(forward yield curves)은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주요 원인은 이들 국가 대부분에서 근원 인플레이션이 수년간 목표치를 지속적으로 웃돌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자료 6).
[자료 4] 이미 긴축 정책을 시작한 일부 중앙은행들
[자료 5] 캐나다, 일본, 영국, 미국의 금리 인상을 반영하는 선물 시장
[자료 6] 중국을 제외한 대부분 국가에서 목표치를 상회하는 근원 인플레이션
재정 적자 문제
중앙은행들이 통화 긴축을 시작하고 있지만, 재정 정책은 여전히 매우 느슨합니다. 2017년 이전까지 미국 재정 적자는 경제 규모 대비 실업률보다 평균 약 2%포인트 낮았습니다. 즉, 미국 실업률이 5%라면 재정 적자는 GDP의 약 3%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나 2017년 이후 이러한 구조적 역학 관계가 뒤집혔습니다. 적자 규모가 '실업률 마이너스 2%포인트'에서 '실업률 플러스 2%포인트'로 전환된 것입니다. 현재 4.3%라는 비교적 낮은 실업률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GDP의 5~6%에 달하는 재정 적자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미국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브라질, 중국, 프랑스, 독일, 일본, 영국 등 다양한 국가들도 막대한 재정 적자를 겪고 있습니다. 브라질과 중국의 적자 비율은 각각 GDP의 7.7%, 8.2%로, 9월 30일에 끝나는 이번 회계연도 미국 의회예산국(CBO)이 발표한 예상치인 5.8%를 상회합니다. 프랑스와 영국의 적자 비율은 각각 4.9%, 3.9%입니다. 독일과 일본의 적자 규모는 현재 상대적으로 작지만(각각 3.8%, 2.0%), 두 국가 모두 향후 인프라 및 국방 분야를 중심으로 공공 지출을 대폭 확대할 계획입니다. 특히 일본의 공공 부채는 GDP의 200%에 육박하며 주요 선진국 대비 두 배 수준입니다. 중동의 걸프협력회의(GCC) 국가들에서도 비슷한 적자 확대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물론 재정 적자 변수가 채권이나 귀금속 시장의 일일 등락을 결정짓는 직접적인 요인은 아닙니다. 그러나 연간 단위로 축적되는 그 파급효과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이처럼 구조적인 대규모 재정 적자가 장기화될 경우, 향후 시장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시나리오를 마주하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 막대한 규모의 국채 발행 물량이 시장에 출회되면서, 주요국 국채 금리를 대폭 끌어올릴 위험
- 국가 재정의 장기 지속 가능성에 대한 구조적 의구심이 증폭되면서, 투자자들이 대안 자산인 귀금속 시장으로 대거 유입될 가능성
미국 국채 금리는 이러한 우려에 크게 반응하지 않았지만, 그 외 다른 국가에서는 달랐습니다. 일본 국채 금리는 급등하고 있습니다(자료 7). 프랑스, 독일, 영국, 호주, 캐나다의 채권 금리도 특히 장기물을 중심으로 급격히 상승하고 있습니다(부록: 주요 지표 차트 1~5 참조).
[자료 7] 급등하는 일본 국채 금리, 재정 압박 가중 우려
미국 국채 금리는 최근 몇 달간 해외 국가들에 비해 상승폭이 크지 않았습니다. 이는 미 재무부가 재정증권(T-Bill) 발행을 늘리는 한편, 연준이 양적 긴축을 완화하여 시장에 유입되는 장기 부채 규모를 줄였기 때문입니다(자료 8).
[자료 8] 장기 부채 발행을 급격히 줄인 미국 재무부
장기 국채 대신 만기가 짧은 단기 재정증권(T-bill) 발행을 선호하는 전략은 단기적으로 장기 금리를 억제하는 효과를 냅니다. 하지만 T-bill 공급이 과도하게 늘어나면 민간 부문 내 초고유동성 자산의 쏠림 현상을 심화시키는 부작용을 낳습니다. T-bill은 성격상 현금과 매우 유사한 자산으로 기능하기 때문에, 이러한 공급 구조의 변화는 중앙은행의 눈을 피해 시중에 돈을 푸는 사실상의 '우회적 통화 완화'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향후 전망
최근의 가격 조정 이후 귀금속 시장은 매력적인 '저가 매수' 구간에 진입한 것일까요, 아니면 추가적인 매도세를 견뎌내야 하는 시점일까요? 아울러 채권 금리의 가파른 상승세는 앞으로도 지속될까요, 아니면 이른바 '사이클상의 고점'에 임박한 상태일까요?
단기에서 중기적으로는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이 단기 금리를 높이고 귀금속 가격을 낮출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근원 인플레이션이 계속 상승한다면 채권과 귀금속 투자자 모두에게 좋지 않은 소식이 될 수 있습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재정 적자의 향방은 귀금속 시장과 장기 국채 금리의 미래를 결정짓는 가장 결정적인 변수가 될 것입니다. 만약 재정 적자를 억제하기 위한 글로벌 차원의 정교한 정치적 공조가 이루어진다면, 장기 금리는 하향 안정화되고 대안 자산으로서 귀금속이 지닌 구조적 메리트도 약화될 수 있습니다. 반면, 지금과 같은 대규모 적자가 고착화되거나 추가로 확대될 경우 장기 금리는 결국 상방 압력을 강하게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재로서는 전 세계 그 어느 곳에서도 긴축 재정을 과감하게 실행하려는 정치적 동력을 찾아보기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마지막으로, 주식 시장은 여전히 향방을 가늠하기 힘든 '와일드카드'로 남아 있습니다. 증시의 랠리가 지속되는 한 탄탄한 경제 성장세 역시 유지될 가능성이 높고, 이는 결국 원자재 등의 자원 부족을 심화시켜 근원 인플레이션을 중앙은행의 목표치 위에 묶어두는 부작용을 낳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장기화되는 주식 강세장은 역설적이게도 국채와 귀금속 시장 모두에게 근본적인 '약세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입니다.
그러나 만약 주식 시장이 심각한 경착륙을 겪게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특히 가계 자산의 주식 전반에 대한 노출도가 압도적으로 높은 미국의 경우, 경제 성장률이 급격히 둔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결국 각국 중앙은행으로 하여금 기존의 긴축 기조를 철회하고 다시 '금리 인하'로 돌아서게 만드는 강력한 유인이 될 것이며, 결과적으로 귀금속 시장의 새로운 강세장을 부활시키는 결정적인 신호탄이 될 수 있습니다.
부록: 주요 지표 차트
[부록 1] 호주중앙은행(RBA) 기준금리 및 만기별(2·5·10·30년물) 국채 금리 추이
[부록 2] 캐나다중앙은행(BoC) 기준금리 및 만기별(2·5·10·30년물) 국채 금리 추이
[부록 3] 유럽중앙은행(ECB) 정책금리 및 프랑스 국채 금리(2·5·10·30년물) 추이
[부록 4] 유럽중앙은행(ECB) 정책금리 및 독일 국채 금(2·5·10·30년물) 추이
[부록 5] 영국중앙은행(BoE) 정책금리 및 만기별(2·5·10·30년물) 길트(Gilt) 금리 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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